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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도시인의 자화상 / 이재한

설악산 2016. 5. 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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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도시인의 자화상 / 이재한                            

 

개만도 못하던 놈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범벅된 눈물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팠던 배는 푸하고 한숨만 내뿜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는 일마다 비틀거렸고

어버이는 송곳보다 더 아픈 흔적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계절을 건너던 허무가 끝없는 시간 속으로 추락합니다

도둑질을 하려니 뜀박질에 자신 없고

강도질을 하려니 양심이 울고 있습니다

배는 허리에 달라붙어 울고 있는데

망할 놈의 세상은 왜 이리 헛기침 소리만 냅니까

하늘이 미치고 세상이 미쳤습니다

3일 밤낮을 굶고 보니 속살까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입으로부터 시작되어

항문으로 토해내는 뻔뻔스러운 것들

심장엔 욕심이 붙어 팔딱거리고

내장은 굶어서도 요동을 칩니다

죽으라 일을 해도 이룰 수 없는 그 무엇들

폐병 환자 같은 기침 소리들만 득실거립니다

집채만 한 설움이 밀려옵니다

죽지 못해 걸어왔던 억장의 길이었습니다  

 

버리지 못할 거면 담지도 말아야 할 것들

타다만 꽁초처럼 미련들만 건들거립니다

가장 천대받고

가장 비참했을 과거

어쩌란 말입니까

비극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날들을

신은 처절한 고통 속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명예도 권세도 허무로 변하는 것을

이승의 한 발짝이 이리도 힘든 날입니다

 

장합니다

살아있으니 장합니다

제발  어제와는 비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토록 착하게 살고 싶었던 어제도 있었습니다 

가슴 후벼 파던 사유思惟들이 떠나고  

 저 어둠 속 침묵도 떠났습니다 

 

      오 바람이여 구름이여

             절망했던 지난 날의 울림들이여

      어제보다 더 나쁜 내일도 이젠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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